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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cal story

산부인과 예진 이야기

비회원 2005.09.29 09:16
오늘부터 또 한달간은 산부인과 실습이다.
실습학생 중 한명은 산부인과 외래에서 교수님이
진료보시기 전에 환자의 예진 차트를 작성해야 한다.

예진이 무엇인고 하니..환자의 산부인과적 병력 청취..즉..생리주기,마지막 월경일 따위...
그리고 분만력..예를들어 만삭을 몇번 했고...유산을 몇번했고 등등...아~주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는 작업이다.

물론 우리 학생들이 예진 차트를 작성하기는 하지만 교수님들은 우리 걸 무시하고 또 진찰을 처음부터 하신다고 하지만..또..우리 생각으로도 우리 실력으로 처음 온 환자의 병력청취를 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지 만서도..하지만..병원에 처음 온 환자들을 맞아...어떻게 병원에 왔느냐 하는 문제 부터 시작하여...환자에 대한 인터뷰를 처음으로 한다는 사실에 대한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오늘 아침에 병원에 들어서기 까지
내 산부인과적 지식은 우리 엄마 만큼도 못한 것이었다...대충 말빨로 때우지 뭐..라는 생각으로 대책 없이 병원에 왔는데..

예진실은 2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하나와 달력하나가 놓여져 있다. 거기 앉아 있으면 간호사가 예진 차트를 가져다 주고 난 환자를 불러들여 예진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하하 간단하군..오늘 하루 여기서 푹 쉬다가 가면 되겠군..

일단 주소(chief complain)이라는 걸 맨 먼저 적게 되는데..이건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느냐 하는 문제이다.

처음 온 환자는 34살 된 아줌마 였다.

"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
" 그냥......"
" 예? "
" 아이...그냥..."
"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분명히 말해주세요.!!"
" 혹이 만져져서..."
" 어디서요? "
" 세척하다가..."
" 예? "

혹이라니? 어떤혹..cyst? solid?
통증이 있었나? 몇개?
언제부터? 갑자기 생겼나 ?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다가

차마 물어볼수가 없었다.

원래는 다 물어봐도 되지만 그땐 처음 하는 거라
내가 진찰을 한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까먹었다.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의 치부를 건드린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삽질한 것이다.
개 삽질이었다.

일단 혼란된 정신을 수습하고
환자를 쳐다 보았다.
등에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지?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몰라도 아는 척 하는 방법을 배운다.
예진차트 에다가
" 세척하다가 혹이 만져짐 "
이라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그랬다가는 교수님이 예진 차트를 갈기 갈기 찢어 버리시고...나는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국장이 나를 박살낼지도 모른다.
하여튼 가르쳐 주는 건 없고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이 시스템이 짜증이 난다.

어쨌든..너무 당황헤서인지 적절한 의학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궁리하고 있는데...
예진차트 뒷쪽에 환자의 예전 진료차트가 끼어져 있는걸 우연히 발견했다.
하...땡큐~~
역시 뭔가 아는척..차트를 뒤적 거리다가 내가 원하는 의학용어를 발견했다.
우리는 역시 이런 경우 기뻐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잠시 뭔가 더 심사숙고 하는 척을 하다가
예진차트에 다가 기입해 넣었다.

이렇게 첫 환자는 어리버리 해결을 했으나...
다음 번 환자 부터가 문제 였다.
나는 잽싸게 산부인과 책을 펴들고
단시간안에 산과적 부인과적 진단법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위기에 몰린 인간은 극한적 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짧은 시간안에 거의 대부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자..이제 다음환자부터는 멋지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다음환자가 들어왔다.

57세 아주머니..

처음에는 잘나갔다.
그런데 산부인과적 병력 청취를 하던 도중..

" 아주머니 자녀분이 몇이세요? "
" 둘 "
" 둘다 달수 채워서 낳지요? "
" 그렇지.."
" 첫아이는 몃살때 났어요 ? "
" 21살.."
" 아..네..남편분이랑 같이 사시죠 ?"
" 그럼요.."
"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 25살.."
" 아..그러니까..21살에 애기 낳으시고 결혼은 25살에 하셨군요.."

나는 그냥 확인차 되내어 본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서는 안되는데..
아줌마는 당황하셨다.

" 아 둘째는 언제 낳으셨어요? "
" 23살..."

허걱..사태가 수습이 안된다...

그러나 이 환자는 그 뒤에가 더 가관이었다.

" 입원하신 적 있어요 ? "
" 나는 안아픈데 우리 남편이 나를 자꾸 의심해서
강제로 4번이나 입원시켰어..내가 가족들을 다 몰살시키려고 한데.."

아마 이 환자..정신과적 병력이 있는 듯 싶었다.
그렇다면 기술할 내용이 더더욱 많아진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간호사가 차트를 2개나 더 가져다 줘서..
이 환자는 빨리 끝내야 했다.

이것 참...
일단 남편의 학대 사실 여부와
부인의 정신과적 병력 여부를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남편의 학대 사실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 여자 환자분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적절히 이용하기만 한다면 아주 유용한 병원의 시스템이 있다는걸 가정의학 시간에 어렴풋이 배운 기억이 있다.
또한 환자에게 정신과적 병력이 있다면 이 것 또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껏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므로 나는 ( 학생이지만 의사의 역할자로서) 유효 적절하게 정신과적 진찰을 기술함으로써 교수님이 정신과적 치료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밀려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산부인과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다는 이유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의 권한으로 조치를 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차트에다가 상세히 기술을 해 놓는다면 교수님이 판단을 하실 것이다.

이렇게 두번째 환자도 아쉽게 실패로 끝났다.

예진이라는 건
환자의 가장 부끄러운 곳,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시시콜콜히 캐 묻는 작업이다.
2평 남짓의 폐쇄된 공간엔 나와 환자 둘뿐이다.
수녀님이 오시더라도 성경험이 있는지를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고 배웠다.
의무 기록은 환자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공개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보호자는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12-3 살 짜리 환자들도 임신 한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흔히 이들은 끝까지 임신사실을 숨긴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 무월경의 가장 흔한 원인은 임신 "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건 절대로 비밀이 보장되는 작업이다.
과연 내가 환자들에게 신뢰를 줄수 있었을까?

역시 오늘도 느낀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학교 졸업하고
수많은 이런 상황들을 대처해 나가야 할텐데..
더 어려운 상황도 많을텐데..
좀더 열심히 공부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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