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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붙잡혀 있을 당신에게

인(仁) 에게

내가 여행을 떠나면서 맨처음 전주에 들른 것을 굳이 따져보자면 숨가쁘게 성장해 온 우리네 도시들 가운데 정적인 느낌을 주는 도시가 몇 없어서라고 해도 너무 주관적인 말은 아닐 것 같구나.

물론 다른 말로 하자면 근대화의 혜택을 덜 받은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굳이 나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진 않겠니?

조선시대 호남지방을 관장하던 전라감영이 있었고 조선왕조를 세운 전주 이씨의 본향이라는 이유로 상당 부문 관향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전주는 드넓은 평야에서 생산한 물산이 풍부해 음식과 풍류가 발달했지. 전라도라는 말이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들을 모아서 만들었을 정도로 전주는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거니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이기도 하단다.

이렇듯 오래된 도시의 어느 한 곳이라도 사연이 서리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마는 ‘경기전’이야말로 전주의 특성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단다.

언젠가 네가 전주에 한번 들렀을 때 건물들의 스카이 라인이 낮아 부드러운 햇살이 감미롭게 부딪힌다고 했었지? 아마 그때 네가 이 경기전에 와 보았더라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구나.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전신그림, 보물 제931호)을 모시기 위해 지은 전각(사적 제339호)이지.

본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고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공 부부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가 뒷편에 있지.

본전 옆 대나무숲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이 사색을 즐긴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해. 또 그 앞에는 국사 시간에 너도 배웠겠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남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 건물이 복원돼 있단다.

이 사고 얘길 좀 더 해 볼까?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로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에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해왔다고 하지. 한 임금이 전왕 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봉안하여 왔단다.

조선 왕조에서 (우리가 흔히 이씨왕조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일제식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단다. 우리나라에는 본디 어느 한 가문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해. 그런데 일제가 이씨왕조라고 표현한 것은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 등처럼 이 씨는 조선의 한 왕조였을 뿐이다라고 생각케 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이 있어) 실록을 편찬한 것은 1409년(태종 9)부터 1413년(태종 13)까지 4년 간의 태조 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라고 해.

1426년(세종 8)에는 정종 실록 6권을 편찬하고 1431년 (세종 13)에는 태종 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 정종, 태종의 3조 실록을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 다른 1부는 충주 사고에 봉안하였단다.

그런데 2부의 실록만으로는 보존이 걱정 되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1445년 (세종 27)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해서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신설해 각 1부씩을 보관했어. 아마도 전주에 사고를 설치한 것은 조선 왕조의 본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관해 오던 것이 1592년(선조25) 임진 왜란 때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의 사고가 모두 소실되어 전주 사고본만이 유일하게 남았지. 그런데 전주 사고본이 남게 된 데에는 선비들의 노력이 있었단다. 그 모진 왜란 중에도 조선의 소중한 기록들을 목숨 걸고 지킨 사람들이 있었던 게지.

손홍록, 안의, 손경승은 전주에서 내장산 용굴암까지 실록들을 지게에 져 날랐다고 해. 전주에서 내장산이면 걸어서 가기로 한다면 2-3일은 꼬박 걸리는 거리겠지. 어떻든 실록은 안전하게 보관했지만 실록을 보관하던 실록각은 1597년 정유 재란 때 소실되었단다. 이것을 다시 얼마 전인 1991년에야 복원한 것이지.

경기전 안에 들어서면 마치 서울의 탑골 공원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있단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공간이 좋아지는 모양이야. 전에 내가 중국 북경의 천단 공원에도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고 말해준 것 생각나니?

그런데 이 경기전도 일제 시대에는 많은 수난을 겪었단다. 경기전의 최소한만 남겨두고 국민학교를 만든 거야.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개칭되었지만 그때야 국민학교 일테니 조금 거슬리는 호칭이라고 해도 조금 참아주기 바래. 그래서 원래 경기전 면적의 3분의 1만 남아있던 것을 전주시가 1991년 경에 국민학교를 이전하고 계속 복원하고 있단다.

참 너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만 경기전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 왕조의 마지막 옹주(후궁의 딸)였던 덕혜옹주가 살기도 했지. 그 때는 그 분에 대한 배려로 경기전을 전면 개방하지 않았단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분도 돌아가셔서 복원 중인 경기전을 다 돌아 볼 수 있지. 그리고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도 경기전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었지.

경기전을 공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 드신 분들만 찾는 곳은 아니란다. 주위에 성심여중고가 있어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 산책 나온 여학생들이며 재수학원에서 나온 학생들로 붐비기도 하지. 경기전은 이런 산책 코스로도 좋아서 재수생들 사이엔 너무 자주 오면 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해서 '삼수 공원'이라고 하기도 한다는 구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경기전 앞에 대조적으로 서양 건물이 서 있는 전동 성당 얘기는 다음 편지에서 들려 주어야 할 것 같구나.

너도 가끔씩은 서울을 벗어나 우리 땅 곳곳을 돌아보면 좋으련만 너의 현실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편지로 대신 위안을 삼으려므나.

그럼 다음 편지에 계속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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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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